2019-12-12 08:20 (목)
[기고] "봉사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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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봉사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행위이다."
  • 편집국
  • 승인 2019.12.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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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국재정지원운동본부 오병호 이사]

18년째 시민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전 까진, 봉사자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봉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봉사를 시작했던 학창시절 초창기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봉사자의 길을 가기 위해 조금씩 준비할 무렵부터 내 마음속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는 무엇인가를 늘 고민해왔고, 동강 살리기 운동으로 시작한 환경 봉사를 시작으로 기후위기 대책 행동,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음악 및 환경 그리고 전기안전 교육봉사 6.25및 베트남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위한 생필붐 기부, 신재생 에너지 교육기부, 전기기술 및 음악 재능교육기부, 우리고장 살리기를 위한 도시청정활동, 산 들판 및 해양오염확산을 막기 위한 환경보호 실천 봉사, 최근에는 4월달 강원산불 피해 도민을위한 봉사, 9-10월달 강원도 태풍 봉사등 숱하게 많은 활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가슴으로 와닿을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5년 가을, 장애인 리코더 앙상블에 참여한 일이었다. 처음 '장애인 리코더 앙상블'을 제안 받았을때는 망설였다. 이때까지 했던 봉사활동처럼 일방통행적인 활동이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애 청소년들에게 악기 연주를 지도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매우 짧았다. ‘음악에 대한 느낌, 이 악기의 소리로 느껴지는 기분과 같이 감정적인 것들을 이끌어 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긴장감과 기대속에서 제대로 연습을 시작하던 때, 음악회를 위한 준비를 모두 연습장에 옮긴 뒤 계획했던 것들을 차례대로 실행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출발은 쉽지 않았다. 자유분방하고 활발한 초등학생들이라 그런지 집중을 잘 하지 못햇다. 혹시나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뭐라고 나무라지도 못했지만 차분해 질때가지 기다렸고, 다시금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활동 진행 중, 한 아이가 앉아있는 나에게 와서는 내 옆에 풀썩 앉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이내 그 아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반응을 굳이 해주진 않았지만 계속 옆에서 대면하다 보니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열어 주었다.

그러다가도 어디선가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ADHD를 가진 한 학생은 어떤 활동이든 집중이 힘들었고, 자신의 뜻에 위배되면 언제든 늑대와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전쟁터를 만들어주었다. 어두움이 짙게 깔린 그 학생 어느 누구도 쉬이 가려 하지 않았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학생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그 아이의 말을 들어 주어야 했다. 어릴적 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아이, 아버지는 일을 하고 나면 늘 술과 함께 난폭함을 부리며 이것이 남자라는 허풍을 늘어놓으며, 자신보다 늘 성적이 좋은 형과 비교를 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거울이었던 그 아이도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바뀌어 버린것이다. 그 이후로 유심히 관찰하는 수 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그 아이의 늑대같은 야성도 어느덧 함께 적응해가며 순한 양이었던 모습도 보인적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빠른 박자에 적응하지 못해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고, 리코더를 불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나는 장애인 친구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함께 리듬을 맞추고, 같은 동작을 연습해줬다. 이해 속도가 더디거나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못했지만 이내 하나의 소리로 리코더 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하나하나 함께 채워가면서 학우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나갔다.

곧 공연이 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고 동해시 장애인 요양원에서 ‘찾아가는 문화 활동-장애인과 함께하는 나눔 음악회’ 참석해 그간의 기량을 보였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 성공적인 음악회에 대한 시장님의 칭찬이 이어졌고, 그제서야 아이들의 눈망울엔 순수함의 이슬이 맺혔다. 그 아이들의 순수한 이슬빛에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전까지 ‘아는 만큼 보인다’ 였던 나의 좌우명은 ‘경험한 만큼 알 수 있다’로 바뀌었다. 나는 이 일로 자신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 편견에 갇혀 있었던 것을 알게 됐고 장애인 리코더 앙상블의 멘토로 활동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는 학교도 나이도 신체적으로도 분명 다른점이 있었지만, 장애인 리코더 앙상블을 통해 ‘함께’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달랐지만, 결국 우리는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음악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연습하는 날, 우리들은 서로에게 감사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내게 주어진 사랑이 담긴 알록달록한 종이속에는 몇달간 함께 했던 아이들과의 추억과 순수함이 그려졌다. 그와 함께 아이들이 사회에서 받았을 온갖 아픈 병에서 조금은 치유가 되었던 기쁜 순간이었다.

봉사자는 단순히 봉사만 하는 직업이 아니다. 첫 봉사를 시작하던 순간 봉사를 받는 사람들 혹은 지역에 상위적인 존재가 아닌 섬김을 알아가는 초년생이 되는 것이다. 나의 뿌듯한 봉사 하나로 봉사의 기쁨을 알고 다른 이들이 봉사를 함께 하자는 말을 건넬정도의 성공적인 봉사를 하고나면 나와 함께 그들도 같이 소통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주는 봉사와 받는 봉사가 동시에 봉사의 주체로서의 봉사자,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봉사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순간, 봉사로 아파해보았던 이들과 봉사로 행복햇던 이들의 모습이 스크레치 되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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