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임진왜란 전적지 답사

제2차 당항포해전과 오리량

입력시간 : 2019-04-16 09:19:55 , 최종수정 : 2019-04-16 10:02:01, 이봉수 기자


임진왜란 발발 2년 후 강화협상 기간이었던 1594년 음력 3월 3일 한산도에 진을 치고 있던 이순신 장군은 고성땅 벽방산 망군(초병) 제한국으로 부터 적선의 동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동틀 무렵 왜선 31척이 괭이바다에 나타나 21척은 당항포로 들어가고, 7척은 오리량으로, 3척은 저도로 갔다는 급보였다. 이순신 장군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한산도를 출발하여 오후 6시 쯤 척후선으로 부터 오리량과 당항포 등지에 적선이 정박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음날인 3월 4일 아침 이순신과 원균, 이억기 연합함대는 약 20척의 전선으로 견내량을 봉쇄하고 거제도 북단의 증도(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시리섬) 근처로 진출하여 학익진을 치고 퇴로를 차단한 다음 괭이바다 안의 적을 치게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도에서 10명, 전라우도에서 11명, 경상우도에서 10 명 등 31명의 장수와 경예선을 차출하여 어영담을 인솔장수로 하여 당항포, 오리량 등지로 급파했다.


오리량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 사이의 좁은 해협이다. 속칭 '콰이강의 다리'가 있는 곳이다.

 
적은 포위된 상태였고 견내량과 거제도 북단을 막아 폐쇄된 괭이바다 안에서 독안에 든 쥐와 같은 형세가 되었다. 어영담의 특수임무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자 진해선창(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에 정박해 있다가 놀라 도망가는 적선을 추격하여
이날 읍전포(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고현리)에서 왜선 6척, 어선포(경남 고성군 회화면 어선리)에서 2척, 시구질포(마산합포구 진동면 주도리)에서 2척 등 총 10 척을 불태워 격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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