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포기하기

사직서 던진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할 뿐.

입력시간 : 2018-12-18 23:02:11 , 최종수정 : 2019-04-17 17:10:05, 심스 기자


1년 여 암 투병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긴 병수발이 끝난 후였지만, 나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현실의 굴레에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시간은 늘 그렇듯 언제나 쏜살같이 흘러갔고, 사회복지 일을 하던 나는 집과 직장의 쳇바퀴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매일의 반복 속에서, 나는 잿빛 하늘을 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나마 '그냥' 배우고 싶어서 들어갔던 상담심리 대학원에서, 나는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이 여행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상담심리 대학원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바로 내가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마음먹게 해 준 것이 이 상담심리 공부를 하면서였으니까.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나 자신의 심리를 되돌아보며, 나는 내재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었다.

폭발하지 못한 화산이 마음속에 있었고, 이 화산을 나는 분출하고 싶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젊음을 더 만끽하고 싶었고, 또 아직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남들은 해보지 못한 특별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우선 가족의 동의를 구했다. 돈도 얼마 모아놓지 않은 놈이 생전 해보지도 않은 것을 해보겠다니.....나라면 쉽게 허락을 해줬을까?

어떻게 내 뜻을 전해야 할까 걱정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어머니와 형님 가족은 전적으로 내 뜻을 믿어주었다.

그러고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 계획을 말해보았다.

이 녀석도 역시 나만큼 제정신은 아닌 놈인지라, 나를 전적으로 신뢰해 주었고 응원해 주었다.


천군만마를 얻었으니, 모든 걱정은 이제 끝.

직장에 사직 의사를 밝히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직장에서도 의아해 했을 것이다.

변변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데 어디 갈 데도 없는 녀석이,

어디 스카우트 받아서 다른 직장 가는 것도 아니고, 기술을 배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여행이라니!


그랬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표현할 방법으로, 이 세상을 한번 원없이 즐겨볼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것도 3개월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을!!!

짧게 어디 머리 식히러 갔다 오는 것도 아니고, 3달간의 유럽일주라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나보다. 이런 생각을 품고 실행에 옮긴걸 보면 말이다.


나는 오히려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에,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다.

딸린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직서를 낸 이상 직장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내 명의로 된 사업장이나 관리할 땅이나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 금은보화를 남겨둔 것도 아니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에, 나는 남은 것을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고,

얽매여 있지 않았기에, 나는 내게 매듭지어진 것을 쉽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직장과 주위에서 어느 정도의 만류는 있었지만, 나의 의지는 확고해져 있었다.

이윽고 사직서가 수리되고 백수가 되자, 나의 maybe는 must가 되었고, 나는 하나씩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자전거를 사고, 여행물품을 사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많은 여행 관련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현지의 숙소도 잡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카우치서핑과 웜샤워는 정말이지 나처럼 부유하지 않은 여행자에게, 여행지를 더 깊숙이 알고 싶은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사이트였다.


여행루트는 몇 가지를 생각했었는데, 최종 낙찰된 경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포르투갈 리스본'을 달리는 여행길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미국 뉴욕에서 LA까지 달려볼까 했는데,

지인 분께서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이고 유럽이 자전거의 대륙이니 기왕 자전거여행을 할 거라면 유럽으로 가라고 하셔서 급격하게 바꿨던 것이다.

리스본을 목적지로 정한 것은 유럽 대륙의 끝이라 정한 것이고, 시작점인 부다페스트는 이것저것 다 따져 봤을 때 가장 '적합할' 것 같아서 고른 도시였다.


그랬다. 나의 여행계획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 자신의 도전이자 내가 지금껏 배우고 경험한 모든 삶의 '집합'이었다.

여행물품을 고르는 것부터 비행기 티켓, 숙소 고르기, 여행루트 정하기, 현지 언어 공부 등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그렇게 하기 싫던 외국어 공부가, 이때는 어찌나 술술 들어오던지......

여행을 준비하던 그 몇 달의 시간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이윽고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짧고 굵은 인사말을 나누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내 생애 가장 큰 여행 짐인 자전거박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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